[ 앙리 마티스 <춤> 1910 ]
야수파 또는 포비즘이라고도 불리며 1905년 파리의 '살롱 도톤느 전'이라는 가을 전시회에서 미술 평론가 루이 보셀이라는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가 이들 그림의 생생하고 평면적인 색채 구성과 흉측한 이미지에서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용어였다.
앙리 마티스가 주동이 된 그룹이었으며 고흐와 고갱의 영향을 받았던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예술에서 잠시 나타났던 미술 사조로써 반자연주의를 기조로 두고 강렬한 색과 표현을 선호하며 창조적 자유 정신을 찬양하였다. 야수파의 흐름 자체는 1900년경에 시작되어 1910년 이후까지 소규모 미술가 집단으로 지속되기는 했으나, 실제 야수파 운동은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약 3년 동안 세 차례의 전시회를 갖는 데 그쳤으며 친구로 구성되어 있던 그룹이어서 결속력도 약했다. 살롱 도톤느 전에서 열렸던 세잔의 회고전을 계기로 야수주의자들은 각자 다양한 조형 양식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야수주의는 해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앙리 마티스는 독특한 장식체계의 확립으로, 앙드레 드랭은 피카소와 함께, 마르케는 중후한 풍경화로, 브라크는 세잔의 치밀하고 구성적인 화면으로, 각자가 자기 본래 추구하던 양식을 지향하여 분리되어 나갔다. 야수파는 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미술 활동이었지만 20세기 현대미술의 신호탄과 같은 주요 사조로써 평가되는데 야수주의를 시작으로 대상을 주관적인 색채로 표현하는 화면 구성이 색채의 추상성에 대한 가능성, 즉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써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개성적인 강렬한 색채를 통해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꾸어 말한다면 각자의 개성의 차이를 발견해 내는 기회의 장소로 삼은 것이 포비즘의 의미였다고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고하는 화려한 '색의 계절풍'이었다.
야수주의 이념을 가장 충실히 구현화 화가 둘을 꼽는다면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랭을 꼽을 수 있다. 마티스는 포비슴의 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표현수단의 순수함을 재발견하는 용기를 고취하고 추진하려는 것이며 화가가 주체적으로 화면에 만들어 내는 색과 모양의 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긴밀한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외 파리 미술학교의 구스타브 모로 문하생인 카므왕, 마르케, 망갱을 중심으로 하여 아틀리에의 친우 프리에스, 뒤피, 브라크와 개인적인 교우를 통하여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반 동겐이 있다. 앙드레 드랭이를 그릴 당시 피카소를 만나서 교류를 하게 되면서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색 면 패턴들로 대상을 단순화 시키면서 자연을 평면으로 환원하였으며 그림자와 빛은 비록 서로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같은 색채 안에서 명암이 조절되기보다는 전혀 다른 색깔로 묘사되어 있다. 드랭은 자신만의 강렬한 색조를 사용하여 생동감을 효과적으로 포착해냈다. 케스 반 동겐이 그린 는 명암의 구분이 없는 노란색의 피부 형태를 표현된 인체는 삼차원적인 양감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분홍색 배경 여가수의 그림자는 빨강과 오렌지색이고 나머지 색들은 노란색과 분홍색을 돋보이게 보이는 원색을 써서 소재에 어울리게 역동적이고 활기를 한층 더 돋보이도록 색을 배치하였다.
이들 화가는 1870년대 태생이라는 같은 세대의 연대감에 기성 회화에 대하여 반발과 거부의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젊은 패기와 야심에서 공통되고 있었다. 그들은 시각의 진실을 추구한 나머지 창조의 주체성과 내면적인 감동을 잃어버린 인상주의를 배격하고, 고흐의 격정과 고갱의 원시적 생명력의 표현은 그들을 한결같이 분발하게 하는 모범이 되었다. 야수주의자들은 튜브에서 짜낸 강한 붓질과 과감한 원색 처리의 안료들을 섞거나 희석하지 않고 직접 캔버스에 표현하였으며, 대상을 세부적인 요소들은 생략된 채로 단순화된 화면은 밝은 색채로 분할된 평면들의 조합처럼 보인다. 야수주의는 대상이 지닌 고유색에 상관하지 않았으며 눈이 아니라 마음의 색채를 밝고 거침없이 표현하는데 표현주의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하며 이지적인 큐비즘과는 달리 감정을 중시한다.
또한 그들은 아프리카와 같은 3세계 미술의 성향인 원시주의에 영향을 받아 더욱 과감하고 강렬하게 색채를 왜곡하여 더욱 더 생략된 묘사와 허술한 표현, 성의가 없어 보이는 붓질이 더해진 야수파의 작품은 당시 비평가들에게 ‘추한 그림 ’그리고 ‘미치광이의 반란’이라는 혹평받았다. 그들은 야수파의 작품들을 야수적이라고 비꼬았으며, '야수파'의 미술적 사조에 가담된 화가들을 ‘야수들’이라 조롱하는 가운데 '야수파'라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 이다.
라울 뒤피 <라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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