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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a one/미술이론

낭만주의 Romanticism

by parkha81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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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까미귀 떼가 앉아 있는 나무> 1822년경

 

 

19세기 미술의 역사는 투철한 도덕관념과 정치적 목적이 강한 미술사조인 신고전주의의 지배로 시작되었으나 낭만주의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낭만주의자들 개인이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미술가들이 아카데미와 사회적 통념, 공공의 견해, 관습 등 미적 취향들로부터 해방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전개된 대단히 광범위한 움직임으로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800년~1850년 사이에 정점을 찍은 미술적, 문학적, 지적 사조이다. 이는 예술적, 사회적, 정치적 가치와 의미에 관련된 제반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 이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본능, 직관적 통찰을 중요시했다. Romanticism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영적인 인간이 지닌 주관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을 이유로 삼아 비판하였다.

넓은 의미에서 낭만주의적이라고 했을 때 이는 기분, 분위기, 직관, 자유로운 감정 토론, 색채의 정열적 표현 등 주관적인 정신 상태가 지배적인 모든 예술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형태와 구조, 구성상의 법칙을 강조하는 고전주의적 미술 또한 이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이상이 되었던 것은 모든 경험에 대한 개인적 표현을 뜻했는데, 낭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미술의 유용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미술을 구원함으로써 자유 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다룬 소재로는 광활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상함과 도덕상, 그에 대한 공포와 초자연적인 현상, 인간 경험의 모든 단면을 포용하고 그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러하여 풍경화가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이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에 대한 동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낭만주의 건축은 고전주의와 신 고딕이 모순 없이 병행하였는데, 영국에서 기존 양식과 취향의 척도에 의심을 가진 호레스 월폴은 자신의 별장을 낭만적 고성처럼 고딕양식으로 짓기로 결정하였고 윌리엄 챔버스는 중국의 건축과 정원 양식을 연구하여 런던의 큐 왕립 식물원에 중국식 탑을 세웠다. 르네상스 이래로 발전해온 건축상의 관례와 전통을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월폴의 고딕 복고와 견줄 만한 그리스 복고가 일어났고 이는 섭정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회화에서는 바로크의 성과를 일체 무시해 버린 나자레파가 모두 낭만주의로 불렸으며 조각은 양식상으로 고전주의와 구별이 불가능하였다. 아카데미의 도제 방식이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상류 사교계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실과 귀족을 위한 전시회를 매년마다 열었는데 미술가들은 상류층의 개인 후원자들의 취향에 맞추고 전시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귀족적이며 전통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 미술가들은 아카데미의 관학적인 미술을 경멸하였고 신고전주의 양식의 지도자이자 정부의 공식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주로 삼았던 주제의 과장된 영웅적 표현, 엄숙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그리는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_ 1830년 파리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에 스페인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런 구태의연한 주제를 내팽개치고 고전주의를 장려하며 허영과 추악함, 탐욕과 공허함을 낱낱이 드러냈다. 1818년경은 고야 자신이 스페인에서 직접 목격했던 우매하고 반동적이며 잔인하고 억압적 폭력에 대한 고발로 제작한 것이며 또 어떤 것들은 그저 고야 자신의 악몽을 형상화하였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무한적 풍경화와 룽게의 신화화된 풍경화 속에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외젠 들라크루아와 테오도르 제리코가 격렬한 감정표출을 지향, 색채와 동세를 강조한 회화적 양식을 수립하였지만 풍경이 아니라 인물화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둘에게 색, 형의 상징적인 파악은 공통으로 낭만적이라 할 수 있으며 외젠 들라크루아가 나타나서 낭만주의는 크나큰 비약을 하게 되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1822년경에 작업한 것은 일몰인지 혹은 일출인지 불분명한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를 그렸는데, 이는 관객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 순환 과정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프리드리히의 화면은 철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조의 순간보다는 우수에 젖게 마련이다. 이처럼 낭만주의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로서 자연을 대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여겼다. 

그 밖의 주요 작가와 작품은 외젠 들라크루아 1830, 헨리 푸젤리 1784, 테오도르 제리코  1822년경, 칼 슈피츠베크  1854년경, 조세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1845년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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