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다다이즘(Dadaism)은 1915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중과 그 직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등장했다.
다다이즘은 유럽 예술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같은 중립 도시에서 시작하였고
그 후 독일 베를린, 쾰른 등 중부 유럽으로 퍼져 나갔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며 각각 독립적 다다이스트 그룹이 형성되었다.
이를 신봉하는 이들을 다다이스트(Dadaist) 또는 다다주의자라고 한다.
이제까지 전해져 온 신념들이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다고 주장하며 파괴적이며 불확실, 불경하며 예술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소재를 가지고 자유로운 미술을 이어 나갔으며 다다이스트들에게는 장난기와 부조리, 대항과 허무, 감정과 직관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다다이즘의 다다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설에 따르면 다다라는 이름은 독일의 후고 발이 스위스 취리히에서 운영하던 '카바레 볼테르'라는 카페의 여러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어 사전에 종이 자르는 칼이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켜서 유아기적 언어, 거세의 의미로 특정지었다는 설이 있다.
1981년 처음 간행된 다다 선언문은 이를 '새로운 사실주의'로 규정하였으며 전쟁의 참상을 충격적인 방법의 감상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비극적 희생에 대한 반응을 이끌었다.
다다이즘은 기존의 미술 형태의 작업 형태가 아닌 일상생활에 있는 오브제를 이용하여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미술의 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의 미술작품을 표현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의 범주를 거부하며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물건들의 고정관념을 파괴하며 일반적인 미술 작품의 정의와 가치 판단 기준이 미술을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의미를 탄생시켰다.
따라서 다다는 하나의 미술 양식이 아니라 세계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다이스트들은 부조리를 무모한 예술 형태로 대담하게 표현함으로써 많은 관람자를 격분하게 했다.
특히, 고상한 형태의 미술 양식을 선호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향한 비판적 태도는 기득권층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 전통적, 문명적, 도덕적 가치를 가장 신랄하게 부정하고 야유하는 모더니스트로 꼽힌다.
즉, 다다는 반이상적, 반도덕적, 반문명적, 반전통적인 규범적 예술 영역을 넘나드는 실존주의이자 허무주의 예술 운동 펼치고자 하였으며 기성의 모든 사회적 속박의 해방과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해지려는 하나의 미술 양식이 아니라 세계관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프로타주, 자동기술법, 콜라주 등이 있다.
쿠르트 슈비터스는 에서 일상생활에서 흔한 전차표, 포장지, 엽서 등을 모아서 만든 자신의 제작기법인 메르츠를 사용하였고 장 아르프는 풀칠한 종이가 우연히 떨어지는 자리에 다시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작풍으로 이어갔다.
프란시스 피카비아는 라는 작품에서 경주용 자동차의 도면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자동차 기화기 도면으로허무주의적 관점으로 재현하였다.
이처럼 부르주아 미술들의 경멸과는 다르게 오늘날 다다 오브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 미술시장에서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개념미술과 1980년대 후기의 미술 작품들은 다다의 아이디어와 태도에 그 뿌리는 두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다의 미술 형태와 방법, 정신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1920년대 중반 구성원의 변화로 다다이즘의 특징적 반항심과 장난기, 재기발랄함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무의식의 예술적 표현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초현실주의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대표적인 작가는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 장(한스) 아르프(1886-1966), 프란시스 피카비아(1879-1953), 만 레이(1890-1977), 쿠르트 슈비터스(1887-1948), 존 하트필드(1891-1968), 한나 회히(1889-1978) 등이 있다.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1887-1968)
현대 미술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은 프랑스 태생이었으나 1955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도서관 사서가 되려고 하였으나 아카데미 줄리안느를 다니며 화필을 잡게 되었다.
1913년 미국 뉴욕에서 '레디 메이드'라는 전시 공간에 기성품 오브제들로 전시하여 충격을 주었다.
일상생활품을 이용한 전시물은 기존 미술에 대한 아이러니, 풍자, 고정관념의 파괴를 시사하였다.
1917년 미국 뉴욕의 앙데 팡당 미술전에서 대량 생산품인 흰 변기를 내보여 반예술의 자세를 보이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소변기에다가 'R Mutt'라고 서명한 이라는 작품이다.
또한 <LHOOQ>(1930, 개인소장)라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콧수염과 남학생의 장난 같은 낙서인 LHOOQ는 프랑스어로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갖고 있다'이며 이는 성적으로 흥분한 상태라는 매우 모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레디 메이드를 통해 뒤샹은 전통적인 수공 기술과 미술의 범주를 거부하고 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작가 마르셀 뒤샹은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이 큰 미술가로 추앙받고 있다.
뒤샹의 미술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서양 미술 세계의 취향을 변화,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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